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베 사다 사건 (문단 편집) === 이시다를 만나다 === 1935년 다시 매춘업을 떠나기로 한 아베 사다는 나고야의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곧 이 식당의 단골 손님인 오미야 고로(大宮五郎)와 연애하게 되었다. 당시 오미야 고로는 정치적 야망을 지닌[*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다고 한다.] [[나고야시]] 시의원이자 고등학교 교장이었다. 하녀가 고객들과 성관계를 갖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알고 나고야에 싫증을 느낀 그녀는 6월 도쿄로 돌아왔다. 오미야는 도쿄에서 아베 사다를 만났는데 이전에 [[매독]]에 걸린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11월부터 1936년 1월까지 구사쓰 [[온천]] 리조트에서 머물게 되었다. 오미야는 아베 사다에게 지난 1월 "작은 식당을 차림으로써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서 제안했고 "요식업계의 견습생으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권고했으며 그녀가 [[도쿄]]로 돌아가는 비용을 지불했고 두 사람이 연인 사이인 동안 아베의 재정적 독립을 보장하기 위해 식당을 소유할 것을 제안했다. 오미야 고로는 아베 사다에게는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했던 남자였다. 당시 오미야는 남자에게 몸을 파는 아베 사다에게 "그렇게 살지 말라"며 충고를 했다고 한다. 아베 사다는 그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보다는 그와 어울리게 되면서 낭만적인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는데 나중에 그들의 성생활을 "불만족스러운" 것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관계를 비밀로 유지했는데 부분적으로는 공직에 출마하려는 오미야의 계획 때문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식당에서 고객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녀를 해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 매춘업소는 겉으로 '일식 식당'이라는 식으로 간판을 달았기 때문에 진정한 식당을 만들려면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또 당시 사다에게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사람은 오미야였다. 그러나 오미야는 아베 사다 사건이 터지고 중요 참고인으로 구속되어 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받고 이후 정치의 뜻도 포기하고 자취를 감췄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kichizo.jpg|width=100%]]}}}|| || {{{#ffffff ''' 이시다 키치조 ''' }}} || 1936년 2월 [[도쿄]]로 돌아온 아베 사다는 오미야 고로의 소개[* 오미야는 아베 사다와 관계를 계속하면서 갱생하도록 반복해서 설득했으며 그녀에게 '작은 요리집을 시킬 테니, 어딘가에서 요리를 수행하라'고 말해서 일을 시킨 곳이 이시다 키치조가 경영하던 요시다야였다.]로 '다나카 카요'라는 가명으로 1936년 2월 1일 요시다야(吉田屋)라는 음식점의 견습생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 가게의 주인이었던 42세[* [[1894년]]생. 아베 사다보다 10살 연상이다.]의 이시다 키치조(石田吉蔵[* 영화에는 '키치'라는 이름으로 나오고 [[마이니치 신문]] 보도자료에서는 길(吉) 자를 훈독으로 읽은 '이시다 요시조'라는 이름으로 나온다.])는 장어 전문점에서 견습생으로 시작해 장사를 해 왔는데 1920년 도쿄 나카노에 요시다야를 열었지만 아베가 이그의 식당에 들어왔을 무렵에는 부인이 주로 경영하게 되었고 식당을 실제로 운영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바람둥이]]로 전락한 상태였다. 이시다는 상습적으로 바람을 피웠는데 아베 사다가 요시다야에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시다 키치조는 아베 사다를 유혹하며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고 이 둘은 [[불륜]] 관계가 된다. 아베 사다의 전 애인이었던 오미야 고로는 아베를 성적으로 만족시킨 적이 없었지만 이시다 키치조는 아베 사다를 완전히 만족시켰다. 4월 중순 이시다와 아베는 식당의 [[게이샤]] 중 한 명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식당에서 성관계를 시작했다. 1936년 4월 23일, 그들은 식당 바닥에서 하는 성관계를 청산하고 시부야 지역의 찻집 또는 마치아이[* 오늘날로 따지면 러브호텔에 해당한다.]에서 예정된 성적 만남을 위해 만났다. 이들은 4일 동안 이 곳에서 [[성관계]]를 하면서 침대에서 보냈다. 아베 사다는 나중에 "방을 청소하는 동안에도 (성관계를)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시다와 아베는 [[도쿄]] 전역의 다양한 찻집과 호텔에서 술을 마시고, 먹고,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짧은 시간 동안만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계획했지만 대신 침대에서 며칠을 보냈다. 이시다 키치조는 아베 사다와 오랜 시간을 보낸 뒤 1936년 5월 요시다야로 돌아왔을 때 2주간 식당을 비웠다. 아베 사다는 이시다에 대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이시다의 어떤 점이 좋았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의 외모, 태도, 연인으로서의 기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에 대해 나쁜 말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이렇게 성적인 남자를 만난 적이 없다. 2주간의 만남이 끝나자 아베 사다는 술기운이 돌면서 과음을 시작했는데 이시다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겼고 자신을 진정시키기 위해 술을 많이 마시기 시작했으며 "이시다를 만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고 이시다가 그의 아내와 함께 돌아온다는 생각에 [[질투]]가 심했다고 한다. 아베 사다는 이시다 키치조를 살해하기 1주일 전 자신의 살해에 대해 숙고하기 시작했다. 아베 사다는 [[연극]]을 보러 가기도 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썼다. 이 연극의 제목은 '쓰야 모노가타리 신사쿠'며 게이샤가 연인을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칼로 살해하는 장면이 연출됐는데 그 장면은 그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그녀는 다음 만남에서 이시다를 칼로 위협하기로 결심했다. 5월 11일, 아베 사다는 그녀의 옷 일부를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으로 식칼을 샀다. 아베는 나중에 이시다를 만난 것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내가 본 연극에서처럼 부엌칼을 꺼내 그를 위협했다. '키치조, 너는 단지 네가 좋아하는 손님 중 한 명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 [[기모노]]를 입었어. 이 개자식아, 그것 때문에 널 죽일 거야.' 이시다는 깜짝 놀라 약간 물러났지만 모두 기뻐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베 사다는 그녀의 수기(手記)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시다 키치조에게 끌렸으며 '난생 처음 알게 된 사랑에 애태우게 되어 밤잠을 설치게 되었습니다'라고 적었고 그때까지 만난 남자와는 다르다고 반복해서 말했으며 '나와 그 사람 사이는, 에로책 등에 쓸 수 없는 아름다운 연애인 것입니다. 어떻게 남들이 알 수 있겠어요?'라고 적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